[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인류의 진화는 요리본능에서 시작됐다

입력 2022-05-10 17:20   수정 2022-05-11 00:03

봄날은 가고 물오른 나무마다 신록이 꽃인 듯 찬란하다. 겨우내 김장김치에 눌린 식욕이 걷잡을 수 없이 분출했는데, 봄이 끝나자 푸른 식욕은 곧 진정되었다. 하지만 홍어회와 묵은지를 곁들인 수육은 내 식욕을 돋운다. 지금 당신의 식사는 즐거운가? 먹는 기쁨은 삶의 슬픔을 상쇄시키고, 먹는 일은 취향을 넘어선다. 당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당신이 무엇을 먹는가를 살펴보라.

열대여섯 살 무렵 처음 먹은 음식은 놀라웠다. 그 낯선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양파를 썰어 넣고 볶은 춘장에 버무린 짜장면이 입안에 들어왔을 때 미각을 감지하는 내 혀의 미뢰가 폭발하는 듯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었다. 나는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먹는 행위는 배를 채우는 일이고, 생명 활동의 일부다. 음식은 상상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하고 기분을 들뜨게 한다. 먹고 마시며 즐겨라, 삶이 축복임을 깨닫게 될 테니! 무언가를 먹고 씹는 일은 외부 물질을 제 안에 들여서 몸의 일부로 만드는 작업이다. 반면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반생명적인 행위이다. 사람은 음식을 기반으로 생존과 성장, 생명 활동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 건 감각의 향연이고, 친교를 나누는 방식, 문화, 의례가 복합된 그 무엇이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술을 빚고 고기를 삶고 음식을 만들어 조상들께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난 뒤 산 자들이 둘러앉아 그 음식을 먹었다. 혼자 먹는 것보다 여럿이 먹는 게 더 즐겁고, 함께 음식을 나누면 친밀감과 유대는 더 깊어진다.

당신도 알다시피 인간은 혼자이면서 집단적인 존재다. 그런 바탕으로 음식이 군집의 촉매제가 된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영장류가 만든 군집의 크기는 감정 교환 능력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인류가 큰 군집을 이루고 상생하는 무리로 진화한 것은 음식을 나누며 쌓은 우정과 친밀감 덕분이다.

따지고 보면, 식(食)과 생(生)은 하나다. 인류 역사는 곧 식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지만 우리는 식을 생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고혈압과 비만의 원인이 되는 음식은 나쁘다는 기준에서 식을 다룰 뿐이다. 식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분명 무지의 소치다. 내 식단에 닭발과 개구리 뒷다리와 자라 피와 원숭이 골 따위는 없다. 특이할 게 없는 이 식단은 내가 특이점이 없는 인간임을 말해준다.



곡식과 야채, 해양 생물들, 동물 고기를 포함해 동물의 알, 젖, 피를 포함해 온갖 것을 다 먹는다는 점에서 사람은 ‘잡식성 동물’이다. 사람은 음식으로 몸을 빚는다. 식욕이란 생존의 동력이고, 활력을 보태는 일이다.

오래전 단식하던 때의 일이다. 4차선 도로 건너편을 걷는데, 건너편 빵집의 빵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단식 중인 내 후각이 예민해져서 평소 맡지 못한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 빵 냄새는 내 안의 식욕을 사납게 흔들어 깨웠다. 그것은 마치 내 안에서 외치는 생존 명령 같았다. 그 경험으로 나는 몸이 항상 삶을 지향하도록 설계되었음을 깨달았다.

어느 해 봄 목포에서 벗들과 먹은 홍어앳국, 통영에서 먹은 도다리쑥국의 풍미를 나는 잊지 못한다. 음식에 묶인 기억은 슬픔과 증오 따위와 더불어 생애 기억으로 또렷하다. 어린 시절 먹은 외할머니의 배추전이나 호박전은 내 미각의 깊은 곳에 새겨졌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그 음식을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이 불가능성에 목이 메도록 서러워진다. 누가 어디서 생산했는지 알 수 없는 재료와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썩지 않는 식품, 포장된 식품에 견주자면 외할머니의 음식은 몸에 좋은 보약이었다.

인간은 요리를 하고 요리를 먹는 존재다. 먹는 것은 외부 물질을 제 안에 들이는 일로 감염의 위험을 낳는 모험이다. 지역마다 음식에 대한 금기와 편견이 있다는 게 그걸 증명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인류학을 가르친 리처드 랭엄은 《요리 본능》에서 요리가 인류 진화의 불꽃이 되었다고 말한다. 인류 진화의 도약은 불의 사용, 화식(火食)의 탄생, 농업의 발명에서 촉발되었다. 수렵과 채집의 역사를 건너온 인류는 수명이 늘고, 뇌의 용량이 커졌다.

뇌 용적의 변화를 촉발한 화식은 식재료의 분자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불로 조리하면 날것으로 먹을 때보다 음식을 더 작게 쪼갤 수 있고 소화가 쉬워진다. 인류가 요리를 통해 생존 능력을 더 키울 수 있었다면 과연 요리 본능 없이 괄목할 만한 진화가 가능했을까?

프랑스 미식가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 예찬》에서 “그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 보겠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빌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지난 일요일에 무엇을 먹었는가? 당신이 먹은 것을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수 있다. 먹는 행위를 톺아보면 인간의 욕구와 그 내면을 탐사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식물은 독립영양생물로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지만 사람은 외부 물질을 씹고 소화시키며 살아간다. 우리에겐 입과 항문이 있고, 그 두 소화기관 사이에 식도, 위, 창자 등이 있다. 음식을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기관들이다. 아울러 뇌에는 식욕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온오프 스위치가 있다. 배가 그득해지면 뇌는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얼마 전 식욕 오프 스위치가 고장 나는 바람에 급체로 고생을 심하게 했다.

음식은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연료다. 이 연료를 들이지 못한 몸은 맥을 못 추고 쇠락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이 ‘먹는 존재’라는 것은 한 치도 어긋남 없는 진리다. 시인 칼릴 지브란은 “절반의 식사는 배고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말한다. 절반의 삶은 충분히 살지 않은 삶이다. 절반의 기쁨이 아니라 온전한 기쁨을 누리고, 절반의 삶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누리려면 충분한 식사를 하라.

무엇을 누구와 먹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상관되는 일이다. 제 고장에서 나온 제철 재료로 조리한 음식이 우리 몸에 가장 좋다. 대형마트에 쌓인 러시아산 대게, 중국·바레인·튀니지·베트남·인도·파키스탄에서 들여온 냉동꽃게는 가급적 피하라. 생산자를 모르고, 유통경로가 모호한 식재료는 거들떠보지도 마라.

나는 제철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온갖 소리와 냄새들로 오감을 자극하는 재래시장에서 구한 것들로 당신의 식사를 마련하라! 이번 주말엔 강화도 재래시장을 한번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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